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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00(2021-02-19, 01:44 Hit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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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 이순용의 행적(1)。
  2021_02_19_09.JPG (26.1 KB), 1



추적/ 이순용의 행적(1)。

이순용의 행적을 철저하게 까발리는 이유는 클럽 정체성 때문이다。이순용뿐 아니고 역대 집행부와 유명인사는 물론 한국골프와 관련된 인물을 망라하고 있다。

①이순용선생(李淳鎔1897-1988)의  미국 공무원의 비밀명은  미국무성의 문서에서  Allen C.Wylie 로 7200 에 의해서 밝혀졌으며 

②그 가족도 모르고 있었으나 선생께서는 미국 비밀 공무원 CIA 요원이라는것과  미군정청 철수(1949년 1월 11일)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가 1949년 12월 9일에 미군용기로 다시 한국에 왔고 그는 美國 타이프라이트의 한국지사장의 직함으로 광화문 국제전화국 관리를 잠깐 일했고 6.25 동란중에는 내무부장관으로 기용되였지만,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물러나는 이유도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는 미국 공무원이였기 때문이며 체신부장관으로 한국해운공사 사장으로, 외자관리처장으로도 있으면서 서울칸트리클럽을 창설할 당시도 서울컨트리클럽 이사장 재직시에도 권총을 소지한 미국 공무원이였다。

③군자리코스 건설공사에는 미군의 장비가 일부 이용되였고, 코스의 일부에 미군 통신부대가 있었는데 코스 재건을 위하여 그 미군 통신부대(정보부대)입구의 출입을 어렵게 하여 미군부대를 내 보냈다는것은  6.25 직후 당시의 미군에게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였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④한국해운공사 사장으로 재직시에는 세관원을 폭행했고 이를 취재하려온 신문기자를 또 폭행했고

⑤외자관리처가 외자청으로 바뀐후에 수입물자를 서울컨트리클럽 공사에 전용한 사건에서 감사원(당시 심계원)의 감사들을 그의 사무실에서 쫓아 낼때 윗옷에서 권총과 실탄이 나왔다는 사실을 이를 증명되고 있다。

⑥선생이 서울에서 별세했고 별세 당일에 미국무성과 CIA에서 미국 뉴욕의 가족에게 조문을 갔는데 그 가족도 선생께서 별세했음과 선생의 신분을 그때에 알게 되였다는 가족의 증언과  미국정부가 선생의 계좌로 별세후인데도 송금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⑦그의 장조카 이해석이 해군중령으로 건설부 과장직에 근무했지만 일약 국장으로 진급된 사실이 있었다。당시의 건설부 장관은 김구선생의 아들 김신이고 김신은 공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이순용이 미국CIA공무원 였음을 알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⑧선생의 막내동생 이면용(李沔鎔)은 무직에서 일약 문화재청 과장으로 발탁되고 그가 군자리코스에서 농사짓든 주민과 서울cc의 상록회 회원들과 주민들과의 협상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⑨일제 강점당시에 독립운동가 탄압에 혁혁한 황해도 송화경찰서장을 지냈고 해방후에는 육군(陸軍)에 입대하여 헌병학교( 1 期)에 편입하여 5 일만에 졸업한 후에 헌병사령부 제 2처장(수사) 직위의 육군 중령으로 '신분을 세탁'하여 영등포경찰서장을 거처 제 4대 서울시 경찰국장과 제 7대 치안국장을 역임(1952.5.25-9.16)하고 구황실사무총국장(現문화재청장) 직위에 있었든 윤우경(尹宇景)의 배후에는 이순용였다。윤우경(尹宇景)은 구황실 땅에 군자리 골프코스를 재건하는데 많은 도움이 있었다。

⑩이순용(李淳鎔)은  John Reed Hodge(주한 미군 사령관 겸 미군정청 군정 사령관, 1893~1963)의 이름으로 신익희를 만나 대한정치공작대를 해체하라고 요구했고 거부한 신익희(申翼熙)선생의 멱살을 잡았고 이후에 백의사 첩보조직(염동진/염응택)을 미군휘하에 두고 그것이 후일에 켈로부대로 개편되였다(계속)。
http://www.88074.com/bbs/zboard.php?id=member_news&no=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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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 (2021-02-19, 01:45)  
독립운동가 염응택(염동진)은
선린상업학교와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했고 중국(장개석)군 장교 신분으로 항일전에 참전하여 일본 군부(관동군)로부터 고문을 당하여 장님이 되였으며 해방후에는 김일성 등 요인 암살을 시도했고 6.25 당시에 피란하지 않고 서울에 남았지만 북한 인민군에 의해서 신분이 발각되어 체포되고 미아리 근처에서 총살되였다고 한다.
7200 (2021-02-19, 01:47)  
독립운동가 염응택(염동진1902 ~?)이 주도하는 백의사(白衣社)는
대북 첩보조직이며 중국 장개석 휘하의 첩보부대 백의사요원 염응택에 의해 조직 운영되였으며 본부로는 적산가옥(敵産家屋)였던 종로구 궁정동(宮井洞 55번지 3)의 민가였고

그 집은 OSS(美 CIA)의 주선이였고 박정희 대통령당시에는 정부가 신축하여 중앙정보부가 궁정동안가로 관리하여 그집에서 김재규에 의해서 박정희대통령이 별세했으며 김영삼 정부때 그집을 뜯어버렸고 그자리는 공원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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